7년 터울로 딸처럼 키웠던 내 동생

7년 터울로 딸처럼 키운 내 동생.

내 나이 열여덟살 아버지는 타지에 계시고 집엔 차압이 들어왔고 그로인해 엄마는 우울증 걸리셔서 알콜의존증이였을 때 매일 밤 엄마의 울부짖음이 무서워 꼭감은 눈 바르르 떨며 자는척 하던 내 동생.
“괜찮다 괜찮다~” 하며 머리를 쓸어주면 금새 잘 자던 내 동생.
나중에 성인이 되고 같이 술마시는데 그 시절 내가 오빠나이였다면 절대로 못버텼을 것 같다고
펑펑 울며 고맙다고 안아주던 내 동생은

바로 위의 톡을 마지막으로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원인미상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화장터에 들어갈때까지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화장을 하는 순간 얼마나 뜨겁고 아플까 라는 생각에 그냥 계속 울부짖기만 한것 같다.
사망신고가 되고 몇개월이 지났을까.. 매일 보던 카톡방이 위처럼 알수없음으로 바뀌었다.
동생이 떠난지 4년이 지난 지금. 부모님과 나는 다행히도 아주 잘 살고있다.
입에 담지도 못할 지옥같은 1년을 보내고 난 후부터는 생전에 가고싶어했던 외국에 가서 좋은남자 만나 결혼생활하는 중이라고 그렇게 되뇌이니 거짓말처럼 숨통이 트였다.
물론 간헐적으로 휘몰아치는 감정은 떨쳐낼 수 없지만 동생이 뭘 원할까 생각해보면 엄마가 아부지가 내가 행복해야하니까. 처음엔 행복강박증에 걸린 정신병자처럼 그러다가 점차 서로 무언가 몰입할만한 것을 찾아 지금은 무사히 행복에 닿았다.
네가 시집가면 축가로 불러줄거라던 노래 요즘도 가끔 부르고있어. 저번에 한번은 너랑 예전에 통화했었던 네 새언니 될사람 앞에서 부르다가 아이처럼 펑펑 울어버렸다. 언젠가 너를 만나게 되는 날 오빠는 할아버지가 돼있겠지만 알아봐주길 바래. 재밌는 얘기 많이 해줄테니까. 항상 그래왔듯이 사랑한다 내동생.
여러 이유로 가족에게 소홀한, 소홀 할 수밖에 없을 많은분들이 저처럼 후회없길 바라며
이 글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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